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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양식 흐름 (도리아식, 이오니아식, 코린트식)

archihistory 2025. 9. 19. 16:58

건축양식 흐름 (도리아식, 이오니아식, 코린트식)
건축양식 흐름 (도리아식, 이오니아식, 코린트식)

 

서양 고대 건축의 근본은 기둥 양식에 있습니다. 특히 그리스에서 발전한 도리아식, 이오니아식, 코린트식은 서양건축 전통의 뿌리이자, 오늘날까지 영향을 미치는 핵심 양식입니다. 이 세 가지 기둥 양식은 단순한 장식의 차이를 넘어, 시대정신과 미학, 건축 기술의 발전을 반영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도리아식, 이오니아식, 코린트식의 특징과 흐름, 그리고 그 의의에 대해 깊이 있게 살펴보겠습니다.

도리아식: 단순성과 힘의 미학

도리아식은 기둥 양식 중 가장 오래되고 단순한 형태로, 기원전 7세기경 그리스 본토와 도리아 지방에서 발전했습니다. 이 양식은 강인함과 절제를 상징하며, 군사적이고 엄격한 성격을 반영합니다.

도리아식 기둥은 기단(베이스)이 없고, 바닥에서 바로 기둥이 솟아오르는 구조를 가집니다. 기둥은 굵고 비례가 낮으며, 세로로 파인 홈(플루팅)이 20개 정도 새겨져 있습니다. 기둥 머리(주두, capital)는 단순한 원형 받침과 네모난 판으로 이루어져 있어 화려함보다 단아한 인상을 줍니다.

대표적인 건축물은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입니다. 이 건축물은 도리아식의 절제미를 극대화하면서도, 미세한 기하학적 조정을 통해 인간의 눈에 완벽한 비례로 보이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기둥은 위로 갈수록 미묘하게 가늘어지고, 건물 바닥은 중앙이 살짝 볼록하게 처리되어 착시 현상을 방지합니다.

도리아식은 단순한 구조적 안정성을 넘어서, “건축은 힘과 균형의 표현”이라는 원칙을 상징했습니다. 이 양식은 고전주의의 기본 미학을 확립하며 이후 이오니아식과 코린트식의 발전에 기반이 되었습니다.

이오니아식: 우아함과 섬세함의 표현

도리아식의 강건한 인상과 달리, 이오니아식은 더 세련되고 우아한 양식으로 발전했습니다. 기원전 6세기경 소아시아 이오니아 지방에서 시작되었으며, 그리스 본토와 아테네에서도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이오니아식 기둥은 도리아식과 달리 기단이 있으며, 기둥 자체는 더 가늘고 길며 24개의 홈이 새겨져 있어 섬세한 인상을 줍니다. 주두에는 양쪽으로 말린 소용돌이 모양(볼루트, volute)이 특징적으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이 장식은 지적이고 우아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학문과 문화가 발달한 지역에 걸맞은 건축 양식으로 평가받습니다.

대표적 사례로는 아테네의 에렉테이온 신전이 있습니다. 이 건축물은 이오니아식 기둥과 더불어 여성상 조각을 기둥으로 활용한 카리아티드(Caryatid)로 유명합니다. 이러한 독창적인 조형은 이오니아식의 실험적이고 예술적인 성격을 잘 보여줍니다.

이오니아식은 단순한 구조적 요소가 아니라, 문화적 세련됨과 예술적 감각을 건축에 반영했습니다. 기원전 아테네가 정치·문화적으로 번영하던 시기에 이오니아식은 그 시대의 미학적 이상을 대변했습니다.

코린트식: 화려함과 장식미의 극치

코린트식은 도리아식과 이오니아식 이후 가장 발전된 기둥 양식으로, 기원전 5세기경 코린트 지방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초기에는 신전 내부 기둥에서만 사용되었으나, 헬레니즘 시대와 로마 시대를 거치며 외부 건축에도 널리 활용되었습니다.

코린트식 기둥은 이오니아식과 비슷한 기단을 가지지만, 가장 큰 특징은 주두의 장식에 있습니다. 아칸서스 잎을 사실적으로 조각한 화려한 장식은 보는 이에게 강한 시각적 인상을 줍니다. 기둥은 길고 가늘며, 전체적으로 장식성이 강조되어 웅장하고 화려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대표적인 사례는 아테네의 올림피에이온(제우스 신전)입니다. 이 신전은 거대한 규모와 코린트식 기둥으로 유명하며, 로마 시대에 완공되어 그 영향력이 더욱 확산되었습니다. 이후 로마는 코린트식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판테온, 포럼 건축 등에서 사용했고,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에도 부활하여 유럽 전역의 교회와 궁전 건축에 적용되었습니다.

코린트식은 “장식미와 웅장함을 통한 권위의 표현”이라는 의미를 지니며, 고대 이후 모든 장식적 건축의 원형이 되었습니다. 특히 로마가 이를 대규모 공공건물에 활용하면서, 코린트식은 고전 건축의 화려함을 상징하는 대표 양식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세 양식의 흐름과 의의

도리아식, 이오니아식, 코린트식은 단순한 기둥의 차이가 아니라, 시대와 지역, 철학적 배경의 차이를 반영합니다. 도리아식은 힘과 단순성, 이오니아식은 우아함과 세련됨, 코린트식은 화려함과 권위를 표현했습니다.

이 흐름은 단순한 장식적 변화가 아니라, 인간이 건축을 통해 세계를 이해하고 표현한 과정이었습니다. 도리아식은 인간의 기본적 질서와 균형을, 이오니아식은 예술적 창의성과 지적 세련됨을, 코린트식은 장식적 풍요와 권위의 상징을 드러냈습니다.

이 세 가지 기둥 양식은 이후 로마 건축을 거쳐 르네상스, 신고전주의, 근대 건축까지 이어졌습니다. 오늘날에도 박물관, 법원, 대학교, 정부 청사 같은 건축물에서 이 기둥 양식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즉, 도리아·이오니아·코린트 양식은 단순히 고대의 유물이 아니라, 현대 건축 속에서도 여전히 살아 있는 언어입니다.

도리아식, 이오니아식, 코린트식은 단순한 기둥의 형태가 아니라, 고대 그리스와 로마, 그리고 서양건축 전체를 관통하는 철학적·미학적 흐름을 담고 있습니다. 도리아식은 힘과 절제, 이오니아식은 우아함과 섬세함, 코린트식은 화려함과 장식성을 통해 시대마다 다른 이상을 반영했습니다.

여행자나 학생, 건축 애호가라면 신전이나 공공건물 앞에 서서 기둥의 형태만 주의 깊게 살펴봐도, 그 건축물이 속한 시대와 문화적 의미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다음 번 유럽 여행에서는 단순히 건물의 웅장함에 감탄하는 것을 넘어, 기둥 양식 속에 담긴 고대 건축의 언어를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건축은 단순한 돌덩이가 아닌, 인류 문명의 대화가 될 것입니다.